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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떠오르는 젊은 사진작가 백승우는 자신의 작업 세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나는 진지하게 역사를 기록하는 작가도 아니고, 숭고한 아름다움을 찾는 작가도 아니다. 굳이 나에 대해 정의하자면 나는 원하는 것을 찾아 다니고, 왜곡하고, 만들고, 상상하며, 나의 세상을 만들고 싶은 소심하고 시니컬한 공상가일 뿐이다” 작가의 이 말은 간결하면서도 정확하게 자신의 작업 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이 글은 작가의 근작(2005-2006)에 초점을 맞추어 그가 특정한 사진작품 안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의 작업에 대한 일관된 생각을 펼쳐가고 있는지를 밝히는 일에 소요될 것이다.

에 앞서 백승우의 또 다른 사진연작을 먼저 살펴보자. 이 두 가지 시리즈에서 그는 현실과 비현실, 실재와 허구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그만의 현실 세계(his own real world)’를 선보인다. 그는 한국의 도심에 위치한 어느 미니어처 공원 안에서 한 데 공존할 수 없는 전세계 각지의 유명 건물들과 지금 그곳에 실재하는 도시 풍경을 자연스럽게 하나 되게 하거나(), 실제 풍경 가운데 작은 장난감 병정들을 배치하여 고요한 마을에 잠입한 일개 군대 소대의 모습을 재치 있게 보여준다<(Real World Ⅱ>). 이 모든 사진은 특별한 카메라 조작이나 후보정 없이 촬영 당시의 카메라 위치와 각도, 화면 구성을 위한 대상물들의 배치만으로 찍은 사실적인 사진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이고 허구적인 느낌을 준다. 이는 특별한 조작 없이 비현실적인 장면– 크라이슬러 빌딩과 거북선, 현대식 고층 아파트가 한데 어우러져 있거나 어두운 밤 집 앞 잔디밭에 작은 장난감 군인들이 들어와 있는 모습-- 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에 의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사진 속 비현실적인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을 통해서 만들어진 현실 세계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를 흐리며 기존의 고정된 틀과 가치를 비틀어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는에서 역시 전혀 다른 방식이지만 일관된 주제로 작용한다. 북한의 수도 평양의 모습을 담은 사진연작은 외관상에서나 기법상에서 두 연작과 크게 다르다. 가 비현실적인 이미지들을 선명하고 또렷하게 담아낸 데 비해, 은 지극히 현실적이여 보이는 이미지들을 거친 입자와 흐릿한 화면으로 보여주고 있다. 언뜻 오래된 신문기사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듯 평범해 보이는 연작은 사진 속 이미지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그 제작과정에 주목했을 때 매우 흥미로운 작업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한다.


‘확대한다’는 뜻의 영어단어‘blow-up’을 아는 사람이라면 어렴풋이 짐작하겠지만은 일차적으로 찍힌 원본 사진의 일부분을 확대한 것이다. 사진에서‘blow-up’은 네거티브 필름 상에서 전체나 일부분을 광학적으로 확대하는 일반적인 용어이다. 그러나 백승우의 사진에서‘blow-up’은 단지 기술적인 용어 이상의 의미가 있다. 에는 촬영할 당시 대상에 접근하는 데 있어서의 외부적 제약, 사진을 찍는 순간에 지각하지 못했던 대상들과 이를 새롭게 발견하고 인지하는 과정, 일차적인 사진과 확대를 거친 결과물로서의 사진 사이의 시간적인 간극,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문제들이 결과적으로 부여하는 현실과 비현실에 관한 작품의 개념적 의미까지 매우 흥미로운 사실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의 원본사진은 작가가 사진기자의 신분으로2001년 평양을 방문했을 당시 찍은 것으로 사실상 기록사진에 가깝다. 오늘날 전세계 유일한 공산주의 국가답게 북한 정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한정된 구역에서의 사진 촬영만을 허락했고 모든 사진은 철저한 감시와 통제 속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그들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사진은 추후 필름 상에서 검열당했다. 하여 그가 가지고 돌아온 필름은 여기저기가 잘려나간 전형적인 북한사진일 수밖에 없었다. 몇 년 후 당시의 필름들을 꺼내 볼 기회가 생겨 검토하는 과정에서 그는 우연치 않게 촬영 당시 보지 못했던 흥미로운 부분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것들을 하나 둘씩 확대해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35mm필름 여기저기를 수 십 배로 확대하여 북한의 숨겨진 부분을 그만의 시선으로 포착해낸 사진이 바로 시리즈다.
 
백승우는 한 달 여간 체류하면서 느꼈던 북한에 대한 감상을 한 마디로“나에게 평양이라는 도시는 영화 트루먼 쇼의 확대된 세트처럼 보였다”고 말한다. 그가 느낀 평양은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이 자국의 모습을 외부에 이상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도시 전체를 체계적으로 구획하고 배치해놓은 비현실적인 곳이었으며,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 고정된 배역을 맡아 연기하는 허구적 인물과도 같았다는 것이다. 그가 한달 여 간 관찰한 결과 실제로 그곳 사람들은 외부인을 만나면 언제나 똑같은 웃음을 짓고 똑같은 이야기를 하며 정해진 일과와 정해진 코스에 따라 움직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정된 위치에서 한정된 장면만을 찍은 원본 사진에서는 이러한 평양이라는 도시의 비현실적인 현실은 포착될 수 없었다. 높이 솟은 건물들, 잘 구획된 도로와 많은 차들, 넓은 무대 위에서 행해지는 숙련된 공연 등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만이 담길 뿐이었다. 그러나 필름의 일부분을 크게 확대하는 행위를 통해 그들의 모습은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드러났다. 에 담긴 사람들의 얼굴은 놀라울 정도로 어둡고 무표정하며, 현대식으로 지어진 건물들 위에는 조악한 조형물이나‘우리는 행복해요’, ‘백두의 혁명정신’과 같은 선전적인 문구가 새겨져 있으며, 대(大)학습당과 종합병원 안의 사람들은 마치 보호소 안에 갇힌 사람들처럼 삭막하고 건조하다. 원본 사진에서는 그저 일반적인 공연장의 모습으로 보였을 무대 위 장면은 더욱 흥미롭다. 영어 표기를 철저히 금지하는 북한의 규칙과 어긋나게 아이들이 연주하고 있는 건반악기에는‘YAMAHA’라는 상표가 또렷하게 새겨져 있고, 무대 배경만을 크게 확대한 장면에는 조악하기 그지 없는 꽃 장식이 가득하다.


이처럼 이 사진들 안에는 당시 사진을 찍은 작가 자신도, 그것을 검열하는 담당 공무원도 지각하지 못했던 모습이 드러나 있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일반적으로 작가가 찍고자 하는 장면을 그 순간의 지각에 기대어 옮기는 특징을 가진 데 반해, 백승우의은 작가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는 지각될 수 없었던 대상물들이 시간의 간극을 거쳐 이미지를 부분적으로 확대하는 과정을 통해 다시 새롭게 지각되는 독특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사진이다. 이는 사람이 보는 것보다 카메라가 훨씬 더 많은 것을 포착할 수 있다는 인간의 지각의 한계에 대한 적극적 인정이고, 모든 사진의 이미지가 반드시 찍는 순간에 완결되는 것은 아니며 중간과정에서 새로운 작품으로 변환될 수도 있다는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백승우의에서 이미지를 확대하는 과정은 작품의 결정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이 사진연작의 제목이<평양>이 아니라인 것은 그가 의도적으로 차용하고 있는 안토니오니의 영화(1966)의 제목이가 아니라인 것처럼, ‘평양’이라는 대상보다‘확대’라는 과정 자체에 무게가 실리기 때문일 것이다(영화에서 주인공 사진작가는 필름의 일부를‘확대’함으로써 자신이 찍은 사진 안에 살인사건의 단서가 있음을 발견하고 진실에 접근해 가려 하지만 스스로 미궁에 빠져간다). 스스로 자신의 관심이 진지하게 역사를 기록하는 데 있지 않음을 밝히고 있듯이 백승우에게 평양이라는 도시는 유일한 공산주의 국가의 수도로서 역사적인 기록 대상이라기 보다, 이 세상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비현실적인 세계로서 작품 소재로 사용하기에 흥미로운 대상에 가깝다. 반면 이미지‘확대’라는 행위는 평양이라는 도시의 비현실적인 현실을 더 극한 현실로 드러내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까닭에 작품의 핵심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는‘확대’라는 과정을 통해 여느 관광객의 사진과 별 차이 없는 평범한 기록 사진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탐구하는 자신의 일관된 주제에 부합하는 작품사진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매 작품마다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왜곡하고 자신의 세상을 만들고자 시도하는 작가 백승우에게에서의 방법상 도구는‘확대’가 되는 셈이다. 에서는 카메라의 시선 처리와 대상물들의 배치만으로 작가 나름의 상상에 찬, 그러나 현실적인 세계를 보여주었다면에서는 촬영 당시 외부적 제약으로 인해 최소화된 작가의 역할을 이후 현상의 과정에서‘확대’라는 적극적 개입을 통해 복원시키고, 북한이라는 비현실적인 세계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보다 현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렇듯 백승우는 남한과 전혀 다른 세상 속에 살고 있는 북한의 모습, 혹은 근대화의 모순을 담고 있는 조악한 남한의 미니어처 공원이나 서구사회에서 전쟁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이미지 등 조금은 거창해 보일 수 있는 것들을 작품의 소재로 삼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국가와 사회는 그에게 그저 자신이 속한 환경에 불과할 뿐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고민하고 자각해가는 본인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이다. 나아가 보다 궁극적인 그의 관심은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진실이 때로는 허상이기도 하고, 실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일이 때로는 버젓이 눈앞에 일어나는 이 세계의 현실과 비현실의 불분명한 경계에 관한 것이다.
무엇보다 백승우의 사진이 담지한 가능성은 이처럼 다소 심각한 소재들을 무겁지 않게 조형적인 완성도를 담보한 채 보여주고, 자신이 생각하는 일관된 주제를 다양한 변주로 풀어낸다는 데 있다. 더 이상 오늘날의 사진이 현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고 할 때, 다양한 형태의 현실과 세계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의 탐구적인 태도야 말로 우리가 현대사진에 기대하는 중요한 일면이 아닐까.

신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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